山 2011년 산행

[함양여행]지리산 제일문 금대산 오도봉 삼봉산

미래(mire) 2011. 4. 18. 00:52

[함양여행]지리산 제일문 금대산 오도봉 삼봉산 

오도령 이라 적힌 이정석과 지리산 제일문  그리고 산신각을 지나면

(삼봉산)이라 적힌 나무팻말이 걸려있다. 

목장승길 대신 산신각 왼쪽 낙엽길로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오른쪽 저 멀리 함양읍이 보인다. 

지리산으로 가는 오도령 정상에 새로운 볼거리인 지리산 제일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다.       

1)산행코스☞오도령(773m)지리산제일문(am:11:05분)→관음정(am:11:10분)→오도봉(1035m.pm:12:00분)→

삼봉산(1187m.pm:12:47분)→ 헬기장(pm:12:38분)→창원마을 갈림길(pm:13:54분)→등구재(pm:14:52분)→

백운산(927m.pm:15:22분)→금대산(847m.pm:15:53분)→금대암(pm:16:52분)→마천중학교(pm:17:35분)  

2)산행시간(13.0km 6시간30분)

3)2011년4월16일(일욜)

4)누구랑:자연을닮은이(미래)콜산:38명과 함께                           

▲오도령(悟道領)은 서산 대사의 제자인 인오 조사가 이 고개를 오르내리며 득도했다고

붙여진 이름이자 가루지기전의 변강쇠와 옹녀가 전국을 떠돌다 마지막에 정착한 등구마을 인근으로

역사와 전설이 서린 곳이다.

▲오도령에 닿기 전 통과해야 하는 속리산 말티재를 연상시키는 꼬불꼬불한 길 지안재는 최근  유명세를 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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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대인 관음정. 지리산 조망을 우선 맛보기 해보라는 의미일 게다. 한눈에 봐도 천왕봉에서 반야봉까지 시원하게 펼쳐지고,

이후 스쳐갈 금대산과 백운산 등구재는 보이지만 우측의 삼봉산은 숨어 있다.

결국 산세로 봐서 오도령에서 반시계 방향으로 크게 도는 셈이다.

▲과연 최고의 전망대답게 지리산 주능선이 더욱 더 가깝게 다가온다.

자세히 보면 사태난 흔적까지 확인할 수 있다.

 

 

▲삼봉산(三峰山)기슭의 촉동마을에 가야 구형왕이 거주하며 무기를 만든 빈 대궐터가 있다는 등 마천 일대에

가야와 관련된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만 이는 전혀 근거없는 사실이다

 

▲삼봉산(三峰山)

 

▲삼봉산(三峰山)의 삼각점

 

▲삼봉산(三峰山)능선에서 야생화

 

▲삼봉산(三峰山)창원마을 갈림길

 

▲삼봉산(三峰山)지나서 등구재

 

▲등구재 지리산 둘레길 이정표에서 28분동안 한숨쉬며 가파르게 오르면 백운산 정상에 도착한다.

 

 

 

▲등구재에서 지나서 백운산 가느길 잔나무군락지

 

▲백운산(902.7m)

▲백운산(902.7m)에서 삼봉산을 배경으로 흔적 남기다.▲백운산(902.7m)을 지나서 암릉▲백운산(902.7m)을 지나서 전망바위▲백운산(902.7m)을 지나서 전망바위

 

▲백운산 능선에서 바라본  마천마을의 다락

 

 

 

 

 

 

금대산에서 하봉 중봉 천왕봉.덕평봉 벽소령 형제봉까지 파노라마 사진에 일일이 지명을 표시한 조망안내도가 서 있다.▲금대산 정상에서 본 지리산 주능선 너무나 가까워 사태난 흔적까지 확인된다. 가운데 제일 높은 봉우리가 천왕봉이며 주능선 

▲금대산 정상에서 마천마을

 

▲금대산 정상에서 마천마을

 

 

▲멀이서 뒤돌아본 금대산

 

 

 

 

금대산에서 유서깊은 천년고찰 금대암은 0.6㎞,18분 걸린다.하지만 금대암가는길을 절에서 막아서 우리일행은 우회하며 1시간 이라 더 걸었다. 금대암 입구에도 하봉 중봉 천왕봉.덕평봉 벽소령 형제봉까지 파노라마 사진에 일일이 지명을 표시한 조망안내도가 서 있다.

▲함양 금대암

 

▲함양 금대암

 

▲함양 금대암

 

▲함양 금대암

 

▲함양 금대암 삼층석탑

 

▲함양 금대암

 

▲함양 금대암

 

함양 금대암 전나무(陽金臺庵)1998년 11월 13일 경상남도기념물 제212호로 지정되었다. 지리산을 앞에 두고 백두대간의 끝자락에 위치한

금대암 입구에 있는 두 그루의 젓나무(전나무)이다. 추정 수령()은 약 500년이며, 그중 큰 나무는 높이 40m, 가슴높이둘레 2.92m로서

현존하는 젓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오래되었다. 조선 성종 때의 문신 김일손()이

기행문인(유두류록()에 산사()를 찾으니 20여 명의 스님이 정진도량하고 있었다.효인이 쓴 시 중에 잘 있느냐 금대절아, 송하문()이 예 같구나. 송풍()에 맑은 꿈 깨어 잠꼬대를 하는구나’ 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볼 때 1403년 당시의 조사()

행호()가 중창한 금대암에는 노송이 많았으며,

이 젓나무도 당시의 것이라고 추정된다.

 

▲함양 금대암에서 수선화

 

▲함양 금대암에서 지났을때 만난 할미꽃

 

할미꽃

 

▲함양 금대암에서 지나서 금게 마천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