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여행]만석꾼의 철학 경주 교동 최 부자
<최씨고택崔氏古宅>최 부자 집 권력과 富 동시에 가질순 없다" 進士이상 벼슬 멀리해 부자가 천당에 가기는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 보다 어렵다’는 말씀 고금을 막론하고 부자가 존경받기는 어려운 모양이다.
경주의 최 부자집은 부자면서도 존경을 받은 집안으로 조선팔도에 알려져.선시대 최고의 부자집이 었던 최 부자 집은
12대 동안 계속해서 만석군을 지낸 집안으로 유명하다.만석군이라 하면 일년 수입이 쌀로 만석이라는 것을 의미.요즘으로 말하면 재벌급 부자이다.12대는 대략 300년의 기간에 해당한다.1600년대 초반부터 1900년대 초반까지 부를 유지했다.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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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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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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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최씨고택 慶州崔氏古宅>
경주 교동법주(慶州敎洞法酒)경주시 교동의 최씨 집안에서 여러 대에 걸쳐 빚어온 법주.
1986년 11월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6-3호로 지정되었다.
┗경주 교동법주(慶州敎洞法酒)
┗경주 교동법주(慶州敎洞法酒)
┗경주 교동법주(慶州敎洞法酒)
┗경주 교동법주(慶州敎洞法酒)
┗경주 교동법주(慶州敎洞法酒)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향교(慶州鄕校)
┗경주 사마소(慶州司所)
경주 내물왕릉(慶州 奈勿王陵)신라 제17대 사적 제188호. 보호구역 1만 2818㎡.
401년경 조성.경주향교(鄕校)의 북방 얕은 언덕 위에 있으며, 대형의
둥근 토분(土墳)이다. 봉분의 밑면 주변에 자연석의 한 모서리가 노출되어 있는데,
이는 무열왕릉(武烈王陵)의 경우와 같이 그 안에 별도의 호석(護石)이
설치된 것으로 추측된다.삼국사기에는 내물왕의 장지에 관한 기록이 없으나,
삼국유사에 첨성대(瞻星臺) 남서쪽에 있다고 기록되었으며 현위치
경주 계림(慶州鷄林) 물푸레나무·홰나무·휘추리나무·단풍나무 등의 고목이 울창하며,
신라 왕성(王姓)인 김씨의 시조 김알지(金閼智)의 탄강(誕降) 전설이 있는 숲이다.
삼국유사에 '60년 탈해왕4년 8월 4일 밤에 호공(瓠公)이 반월성 서쪽 마을을 지나가는데,
마을 옆 숲이 황금 궤에서 나오는 광명으로 가득 차고 흰 닭 한 마리가 울고 있어 탈해왕에게 고하였다.
왕이 즉시 이 숲으로 가 궤를 열어보니 사내아이가 있어 알지라 이름하였고, 금궤에서 나왔다하여 성을 김(金)이라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계림이라는 명칭은 숲에서 닭이 울었다는 데서 연유되었으며, 후에 국명으로도 쓰였다.
신라의 신성한 숲이라 하여 현재까지 보존되어 오며, 100여 주의 고목과 l803년에 세운 비가 있다.
경주 계림(慶州鷄林)의 연리지뿌리가 다른 나뭇가지가 서로 엉켜 마치 한나무처럼 자라는 현상이다.
매우 희귀한 현상으로 남녀 사이 혹은 부부애가 진한 것을 비유하며 예전에는 효성이 지극한 부모와 자식을 비유하기도 하였다.
나무 연리지가 유명하며 사랑을 상징하는 나무로 보호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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