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여행]300년을 거슬러 울산의 혼 줄다리기 마두희
마두희는 당나라 발하놀이를 본뜬 것으로 해마다 단오에 병영과 울산부에 사는 사람들이 미리 칡 줄을 준비하고,
하짓날에 객사 종루 앞에 모여 길을 갈라 동서로 편을 짜서 각자 꼬아 줄목을 만든다.
줄목고리는 자물쇠로 거는 것과 같이 하여 암줄과 수줄이 걸리도록 한다.
두 사람을 남복과 여복을 입혀 남자는 동쪽, 여자는 서쪽 줄목에 올려 세워 양편 사람들이 줄을 메고
어루며 놀다가 재빨리 줄을 연결하면 곧 남 여는 땅에 내려서고,바로 북을 치고 함성을 지르며 무리들이 단결하여 서로 당긴다.
이후 칡줄과 비녀목은 태화나루 시공에게 주어 배 매는 말뚝과 줄로 쓰게 한다.
대개 마두희란 예로부터 이르기를 동대산의 한 맥이 남으로 달려 바다에 떨어진 모양이 말머리 같은데,
원래 서쪽으로는 돌아보지 않으므로 고을 사람들이 불길하다 하여
그 달리는 것을 밧줄로 끌어당김으로 이로써 그 이름한 것이다.
서편이 이기면 풍년이 들고, 동편이 이기면 흉년이 든다'라는 내용이다.
이 내용을 다시 정리하면, 오월 단오부터 칡넝쿨을 걷어와 협동으로 각자의 밧줄을 만드는데,
동서로 양편을 만들며, 동쪽은 남자의 상징이,
서쪽은 여자의 상징이 각각 줄을 준비 했다가 하짓날 암수 줄을 걸어 당기는데,
서쪽편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는 것이다.
또 이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는 울산의 동대산과 무룡산이 북쪽에서 남쪽으로 달려 내려오다가
방어진 앞바다에서 바다속으로 들어가고 마는 지형인데,
이렇게 되면 풍수지리적으로 울산의 정기가 바다에 함몰하므로
여기에 줄을 걸어 당김으로 정기를 잡아오자는 뜻이라고 밝히고 있다.
마두희(馬頭戱)라는 이름을 풀어보면, 말 마(馬), 머리 두(頭), 희롱할 희(戱)자를 쓰는데,
이것은 울산의 진산인 무룡산 일대의 산들이 남쪽으로 내려와 바다에
머리를 담그고 함몰하는 모양이 마치 말머리와 같은데, 이 머리를 끌어 당겨 희롱하며,
정기를 가두어 두자는 의미이지만, 더 깊은 속뜻이 분명히 가지고 있다.
머리 ‘두’자는 국어에서 대체로 끝 지점, 정상을 뜻하는 것으로
백두산의 ‘두’자와 지리산의 옛 이름인 두류산의 ‘두’, 울산의 신두산 등 모두가 가장 우두머리,
꼭대기란 뜻을 가지고 있다.그러므로 바다로 함몰하는 것은 단순히 산의 모양새만 아니라,
울산의 기운 전체가 바다로 끊어져 들어가므로 산의 맥이 끊어진다는 단산의 의미가 있고,
또 서쪽으로 돌아보지 않음은 울산을 외면한다는 생각에서 사람들이 밧줄을 걸어 당겼는데,
어떻게 산을 끌어당길까? 그러니 자연 줄을 걸었다는 의미를 부여하여 주술적인 놀이를 하니
이것이 바로 ‘마두희’인 것이다.줄다리기가 끝나고 나면, 암줄과 수줄을 연결하였던
비녀목과 줄을 왜 하필이면 태화나루의 사공에게 주어 배를 매달아 두는 말뚝과 밧줄로 쓰게 하였을까?
이것은 태화강에는 용금소가 있어 여기에 용이 살고 있다고 보았고,
이 용이 살고 있는 강가에 말뚝을 바고 줄을 맨다는 것은 바로 용신의
힘으로 말머리를 당겨 매어 두자는 주술적 신앙의 생각이라 여겨진다.
다음으로, 왜 동쪽은 남자고, 서쪽은 여자인가 하는 점은,
음양사상에 남자와 동쪽은 양이며, 힘을 상징하고, 여자와 서쪽은 음이며,생산을 상징한다,
이렇게 볼 때 힘의 동쪽보다 생산의 능력이 있는 서쪽을 은근히 이기게끔 하므로 풍년을 기대했고,
동쪽의 바다로 빠지는 정기를 끌어왔다는 의미를 부여했다고 보아진다.줄도 그렇게 만들었다.
줄 머리는 고리형태로 만든는데, 동쪽은 고리를 세워서 수줄이 되게하고,
서쪽은 고리를 눕히니 암줄이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줄을 서로 결합시키는 것은 남녀 합환을 의미하고,
이렇게 결합되어야 비로소 생산의 능려깅 있다고 생각하였으니, 참 재미있는 발상이다.
줄의 재료도 좀 독특했다. 다른지방에서는 짚으로 굵게 만들었는데,
울산에서는 칡넝쿨을 소재로 했다는 점이다.이 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외줄이 아니다.
줄은 몸줄과 벗줄로 나뉘어지는데, 몸줄은 굵기가 어른 허벅지보다 약간 굵게 만들고,
이 사이에 손에 쥐가 알맞은 가지줄을 촘촘히 달아 이 가지줄 즉 벗줄을 잡고 줄을 당기는데,
그 전체 길이가 보통이 아니다.1936년, 마두희에 쓰여던 줄의 길이가
동쪽의 예을 들면 중앙이 지금의 성남동 시계탑 사거리였고, 끝은 구 역전
너머까지 갔다고 하니 이렇게 긴 줄이라면 쉽게 다루기가 어렸웠을 것이고,
만약 짚으로 했다면 인장력이 모자라 중간에 끊어지기 일수였을 것이다.
줄다리기는 단순한 운동경기가 아니다,
적어도 우리의 염원을 주술적으로 담아낸 민속놀이이다.
2015년.10.17일(토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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