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06년∼2007년산행

[치술령]임이시여! 애틋한 思夫曲 굽이굽이 그곳 두동-치술령(765m)

미래(mire) 2008. 4. 19.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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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울산 치술령 정상에 있는 망부석(望夫石)과 인근의 은을암(隱乙巖) 설화는 유명하다. 신라 눌지왕 때 박제상의 아내가 전설의 주인공이다.

    오매불망 남편을 그리워하다 돌로 변해 망부석이 되었고, 그 영혼이 새가 되어 날아든 게 은을암이다. 1970년대 중반, 가수 김태곤이 '망부석'이란 제목의

    노래를 불러 인기를 얻었다.1925년에 발표된 김소월의 시 '초혼'에서도 망부석 설화는 엿보인다. 그 내용 중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든 그 사람이여!'의 '돌'이 그것.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혼의 화자는 여자이다. 하지만 이 시의 시대적 배경 등을 고려하면,

    여기서 말하는 사랑하는 '임'은 '빼앗긴 조국'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애절한 망부가(亡夫歌)는 지속되고 있다. 지난해 경북 안동

    고성 이씨 가문의 이응태라는 사람의 묘를 이장하던 중 발견된 편지도 그중 하나. 지아비를 잃은 슬픈 심정을 절절하게 적어 남편의 관 속에 넣어둔 한글로

    된 편지였다. "꿈속에서는 당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라고 여러 번 반복해 말하는 아내의 지순하고도 사무친 사랑의 망부가이다. 415년 전의 일이니, 사랑의

    감정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음을 새삼 실감한다.'레나테 홍 할머니의 망부가'는 분단이 초래한 가슴 아픈 사연이다. 북한 출신 동독 유학생 홍옥근(76)

    씨와 결혼한 독일인 레나테 홍(73) 할머니가 결혼한 지 1년 만에 헤어지고 나서, 47년을 기다린 끝에 극적으로 2008년 북한에서 잠깐 만났으나 곧바로 헤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60년 망부가'를 부른 고(故) 낸시 휴머스톤 여사의 합장식이 열렸다. 결혼식을 올린 지 3주 만에 헤어져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한

    호주군 장교인 남편 케네스 존 휴머스톤의 곁에 묻힌 것. 평생 사랑하는 남편을 가슴에 품고 혼자 살아온 낸시 휴머스톤은 2008년 10월 호주에서 숨지기

    전 "남편 곁에 잠들고 싶다"라는 유언을 남겼었다. 전쟁도, 세월도 갈라놓을 수 없었던 그녀의 애틋한 순애보는 갈수록 사랑하는 감정에 인색해져만

    가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듯하다.  ●(2008년4월19일)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산을 오를 때 산에 얽힌 전설이나 이야깃거리가 있다면 산행은 더욱 흥미로워진다.신라 충신 박제상의 설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울산시 울주군

   두동면과 경북 경주시 외동읍의 경계에 자리한 치술령(767m)을 다녀왔다. 설화라 하지만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로 그 역사적 사실성이 담보된 것이기에

   산행 곳곳에서 만나는 박제상과 그 부인의 이야기가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는 듯했다.정상에는 신모사지(神母祠址) 비석이 서 있다. 정상에서 치술령

   망부석 안내판을 보고 내려서면 박제상 부인이 남편을 그리다 죽어 화석이 됐다는 망부석이 있다. 이곳은 경주 측에서 주장하는 망부석 자리. 울산시내와

   경주시 외동읍이 바라보인다. 날이 맑으면 동해바다도 조망할 수 있다. 박제상 부인의 넋이 새가 되어 숨어들었다는 바위 굴이 그대로 남아있다. 은을암에서

   계단을 통해 내려서 왼쪽 시멘트길을 10여분 걷다보면 고갯길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선다. 이 고개가 서낭재. 서낭재에서 숲길로 들어선 뒤 15분여 만에

   삼각점이 있는 373m봉에 이를 수 있다. 이곳에서 7~8분 가면 다시 임도를 만나게 되며 임도를 건너 벽진이씨 납골묘를 지나 직진하면 곧 철탑이 나타난다.  

   박제상의 설화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 문헌에 따라 조금씩 내용이 다르지만 큰 줄기는 명확한 편이다.박제상은 신라 눌지왕 2년(418)에 고구려에

   사신으로 가서 장수왕을 설득해 눌지왕의 아우 복호를 데려왔다. 또 복호를 데려온 자리에서 눌지왕이 왜국에 있는 아우 미사흔을 그리워하자 박제상은

   곧바로 다시 왜국으로 향했다. 신라를 배반하고 도망쳐왔다고 속인 박제상은 미사흔을 빼돌려 신라로 도망치게 하고 자신은 붙잡혔다.신하가 될 것을 청하는

   왜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박제상은 목도(木島)에서 불에 타 숨지고 만다.삼국유사에 따르면 제상의 부인이 남편을 그리워하며 세 딸을 데리고 치술령에

   올라가 왜국쪽을 바라보며 통곡하다가 화석이 되어 망부석(望夫石)이 되었다고 한다.또한 그 넋은 새가 되어 날아가 그 옆의 국수봉 바위 굴로 숨어들었는데

   그 곳이 바로 은을암이다. 은을암(隱乙岩)의 의미가 바로 새가 숨은 바위란 뜻.또 그 새가 날아와 앉은 자리를 비조(飛鳥)라 부르니 지금의 두동면 만화리의

   비조마을이 그 곳이다.사람들은 박제상의 부인을 치술신모(致述神母)라 하여 사당을 세워 제사를 지냈는데 지금의 박제상유적지가 그 사당터다.

   조선시대에 이곳에 치산서원이 세워졌다고 한다. '증보문헌비고'에 그 유래가 전하는 신라가요 치술령곡도 박제상의 부인을 기리는 노래다.

   부인과 함께 첫딸 아기(阿奇), 3녀 아경(阿慶)도 울다가 죽었지만 2녀 아영(阿榮)은 어린 동생 문량(文良)을 위해 살아남았다고 한다. 문량이

   바로 방아타령으로 유명한 백결선생이며 아영은 미사흔의 아내가 되었다고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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