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배동(拜洞)에 나란히있는 베리삼릉 3기(基)의 왕릉.사적 제219호.신라의 박씨왕인 제8대아달아왕(阿達羅王) 제53대신덕왕(神德王) 제54대(景明王)삼릉
능(陵)의 형식은 규모가 큰 원형 토분(土墳)이며,표식(表飾)은 하나도 없고,상석(床石)이 하나 있으나 최근 설치한 중앙에 위치한 신덕왕릉은 1953년과 1963년
2차례에 걸쳐 조사되어 내부 구조가 밝혀졌는데,널길[羡道]을 갖춘 석실(石室)이 있고,석실 내부는 회(灰)를 칠하였다. 또한 밑에서 1.4m 높이까지 2단으로
방형(方形)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황(黃) ·백(白) ·주(朱) ·청(靑)의 채색을 한 흔적이 있다.
┗월성대군 단소:경주 서남산 기슭의 약수골 초입에 있다.2005년 5월 월성박씨대종회가 조성한 단소는 월성대군을 비롯해 묘소가 실전(失傳)된 월성박씨 후손
11위를 모신 제단.월성대군은 신라 박혁거세의 29대손인 경명왕(신라 54대 왕)의 8번째 왕자이다.이름은 박언의(朴彦儀)로, 월성대군에 봉해졌을 때부터 월성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신라월성대군박언의지단(新羅月城大君朴彦儀之壇)'을 중심으로 왼편에 11위의 제단이 조성되어 있고, 넓은 잔디밭에 다양한 석물들이 서 있다.
단소 앞에는 월성 박씨의 연원(淵源)을 소개한 표지석이 있다. ★(2012년3월25일(일욜) 날씨:바람과강추 오늘은 서남산의 그림을 그리다.
┗월성대군 단소
┗월성대군 단소
┗월성대군 단소(들머리)
┗내남면 용장리 뒷비파마을 월성대군단소(들머리(am:10:15분)→이정표→약수골(am:10:22분)→석불좌상(am:10:44분)→마애대불(am:10:52분)→
금오봉(am:11:15분)→상사바위(pm:12:08분)→삼릉갈림길(pm:12:13분)→마애불상→상선암→석불좌상(pm:12:41분)→선각여래좌상(pm:12:48분)→
선각육존불(pm:13:03분)→석조여래좌상(pm:13:09분)→마애관음보살상(pm:13:10분)→배리삼릉(pm:13:19분)→서남산(pm:13:25분)♡(산행시간:7.0km 3시간10분)
┗내남면 용장리 뒷비파마을 약수골
┗내남면 용장리 뒷비파마을 약수골
┗내남면 용장리 뒷비파마을 약수골
┗내남면 용장리 뒷비파마을 약수골
┗경주서남산약수골 계곡변에 있다. 머리가 없는 석불여래좌상으로, 엄지손가락도 잘려 나갔고, 상대석과 중대석은 석불과 따로 떨어져 흙에 절반쯤 묻혀 있다.
결가부좌로 앉은 석불은 풍만한 몸체로 우견편단의 가사를 입고 있고, 상대석에는 연꽃이 위로 향하고 있는 앙련(仰蓮)이 24개 새겨져 있다.
사각의 중대석에는 신장상(神將像)을 새겼는데, 사면에 양각된 것으로 보아 사천왕상으로 여겨진다. 대좌에 신장상이 등장하는 것은
700년대 말 ~ 800년대 초에 시작되는 양식으로, 이 불상은 800년대 작품으로 추정된다.
┗내남면 용장4리 뒷비파마을 약수골의 마애대불 이정표
┗내남면 용장4리 뒷비파마을 약수골의 마애대불 리지구간
┗내남면 용장4리 뒷비파마을 약수골의 마애입불상 (慶州藥水溪谷磨崖立佛像) 1979년 1월 25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14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8.6m, 너비 4m로
남산(南山)에 있는 석불 중 가장 크지만 어깨 이하 부분만 남아 있다.머리는 다른 돌을 조각해서 얹게 만든 구조인데 결실되었으며, 목 부분만 부근에 있다. 부처의
발은 만들어 붙인 것으로 오른쪽 발이 따로 불상 앞에 놓였다.바위면 양옆을 30cm 이상 파내어 육중하게 몸체를 나타냈으며,손이나 옷주름도 10cm 정도 깊게 부조하여
햇빛이 비치면 그림자가 생겨 뚜렷이 보이는 환조(丸彫)에 가까운 표현기법이다. 왼손은 굽혀 가슴에 대고 오른손은 내려서 배 앞에 들어 설법하는 모습으로, 두 손
모두 엄지·중지·약지를 맞대었다.특히 옷주름의 표현기법이 특이한데,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밑으로 비스듬히 흘러내린 옷주름이, 양쪽 팔에 걸쳐져 수직으로
내려오는 옷주름과 대조되어 아름답다.전면(全面)을 감싼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식으로 다소 단조롭고 도식적이지만 각선(刻線) 분명하여 힘이 있으면서도 유려함
┗내남면 용장4리 뒷비파마을 약수골의 이정표
┗금오봉 이정표
┗慶州國立公園 慶州南山 金鰲峰,.高位峰.獅子峰.금오봉에서 산친구과 함께 서남산 역사탐방
┗慶州國立公園 慶州南山 金鰲峰, 기념사진
┗상사바위
┗마애불상
┗상선암
┗배리삼릉 이정표
┗배리삼릉의 마애불상 탐방로 통제
┗배리삼릉의 금송정
┗배리삼릉의 거북등 바위
┗배리삼릉의 석불좌상 이정표
┗배리삼릉의 석불좌상
┗배리삼릉의 석불좌상
┗배리삼릉의 석불좌상 둥굴
┗배리삼릉의 거북이 바위
┗배리삼릉의 거북이 바위
┗삼릉계곡 냉골의 선각여래좌상1982년 2월 24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었다. 삼릉계곡(三陵溪谷) 신라의아달라왕(阿達羅王),신덕왕(神德王),
경명왕(景明王) 등 3왕의 능(陵)이 있다는 데서 유래한다. 이 계곡 안 암벽 여기저기에 여러 개의 불상이 새겨져있는데,거의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이다. 그러나
이 불상만은 고려시대에 새긴 것으로 추정되어, 신라와 고려시대의 불상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이 불상은 앉아 있는 모습의 여래상(如來像)으로, 계곡 안
서쪽을 향한 높이 10m, 너비 10m 정도 되는 암벽에 새겨져 있다. 암벽 중앙에 자연적으로 수평 금이 갔는데, 그 금 아래쪽을 대좌로 삼아 여래좌상을 조각하였다.
몸체는 모두 선으로 그은 듯이 새기고 얼굴만 돋을새김을 한, 독특한 조각수법이다.코는 길고 입술은 두껍고 커서 과히 점잖은 얼굴이라 할 수 없으나, 어딘지 모르게
위엄을 풍기는 모습이다. 조각 수법이 정성스럽지 못하고, 특히 다리 부분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은 듯 하여 미완성 작품으로 여겨지기도 한다. 높이는 1.2m이다.
선각여래좌상이 있는 곳에서 아래로 약 500m 내려간 지점에,역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는 선각육존불상이 있다.
┗배리삼릉의 선각여래좌상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선각육존불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선각육존불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선각육존불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석불좌상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석조여래좌상 높이 1.6m, 무릎 넓이 1.56m 규모의 석불좌상으로, 1964년 8월 동국대학교 답사팀에 의해 현재의 자리에서
남쪽으로 30m 떨어진땅속에서 발견되었다. 머리 부분이 결실되고 양쪽 무릎도 파손되었지만 나머지 부분은 비교적 형태가 뚜렷하게 남아 있다.특히 가사의 유려한 주름과 왼쪽 어깨와 가슴
중앙의 매듭 무릎 위로 흘러내린 매듭 끈 매우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복식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전체적인 형태로 미루어 통일신라시대 것으로 추정정.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마애관음보살상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마애관음보살상
┗배리 삼릉계곡 냉골의 마애관음보살상삼릉계곡 냉골의 마애관음보살상1972년 12월 29일 경상북도유형문화재 제19호로 지정되었다. 이 계곡 이름의 유래가 된
삼릉(三陵) 앞을 지나 계곡의 안쪽에 있는 높이 약 2.4m의 석주형(石柱形) 암벽 남면에 돋을새김되어 있는 관음보살상이다. 연화좌(蓮華座) 위에 직립하고 있는 이
마애석붕이 언제,누구에 의하여 제조되었는지 정확한 것은 알려져 있지 않으나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의 작품인 것만은 확실하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한
손에는 보병(寶甁)을 들었으며,얼굴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어 부처의 자비스러움이 잘 표현되어 있는 불상이다.입술가에 도는 붉은 빛깔로 인해 이 불상의 미소가
더욱 인상적으로 비치는데,이 빛깔은 인공적으로 첨색한 것이 아니라 자연암석의 붉은색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어서 더 신비스럽다. 가슴에는 영락(瓔珞),팔에는 팔찌를
끼고 있다. 오른 손을 굽혀서 가슴에 대었고 U자 형의 천의(天衣) 자락이 두 다리로 각각 내려가 부드러운 옷주름을 형성하고 있다.양감있는 얼굴과 신체의 묘사,잘룩한
허리의 표현 등 통일신라시대의 이상적인 사실의 양식이 잘 반영되어 있다. 뒷면에 직립한 석주형 바위가 광배(光背) 역할을 하기도 하여, 자연의 경관에 인공미를
더한 듯하다. 이 불상의 동편에 위치한 머리 없는 불상은 남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지점의 소나무 숲속에서 출토되어 이쪽으로 옮겨짐 이 불상이 새겨진 바위 부근은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사찰을 세울 만한 공간이 없는 것으로 보아 원래 노천불(露天佛)로 제작되었던 것 같다.
┗냉골의 배리삼릉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拜洞)에 나란히 있는 3기(基)의 왕릉. 사적 제219호. 신라의 박씨 왕인 제8대 아달아왕(阿達羅王) 제53대 신덕왕(神德王),제54대 경명왕(景明王)
삼릉이다. 능(陵)의 형식은 규모가 큰 원형 토분(土墳)이며, 표식(表飾)은 하나도 없고, 상석(床石)이 하나 있으나 최근에 설치한 중앙에 위치한 신덕왕릉은 1953년과
1963년 2차례에 걸쳐 조사되어 내부 구조가 밝혀졌는데,널길[羡道]을 갖춘 석실(石室)이 있고,석실 내부는 회(灰)를 칠하였다. 또한 밑에서 1.4m 높이까지 2단으로
방형(方形) 구획을 만들고, 그 안에 황(黃) ·백(白) ·주(朱) ·청(靑)의 채색을 한 흔적이 있다.
┗배리삼릉
┗배리삼릉 경주시 배동 서남산(날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