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여행

[중국여행]국내성벽 5호묘 광개토왕비 장수왕릉

미래(mire) 2012. 8. 29. 18:00

[중국여행]국내성벽 5호묘 광개토왕비 장수왕릉

장수왕릉 중국  지안현에 있는 고구려의 석릉 3세기 초부터 427년까지 고구려가 도읍한 지안현 퉁거우평야에는 광개토왕비와    

고구려 최대형 무덤인 태왕릉 사신총 등 석릉과 토분 1만 가 있으나 외형이 거의 완존 석릉은 이것뿐이다.

화강암 표면을 정성들여 가공한 절석을 7단의 스텝 피라미드형으로 쌓았는데,기단의 한 변 길이 33m, 높이 약 13m 이다.

기단의 둘레에는 너비 4m로  돌을 깔았으며,그 바깥둘레에 너비 30m 의 역석을 깔아 능역)을 표시하였다.

널방은 화강암의 절석을 쌓아 지었는데, 천장석이 있는 굴이며, 2개의 널받침]이 있다.

1905년 일본인 학자 도리이가 처음으로 현지조사하고,프랑스 학자 일본인 세키노 다다시    

조사하여 남만주조사보고등에 발표한 뒤부터 학계에 알려졌다.

돌무지돌방무덤은 대체로 3세기 말∼4세기 초로부터 5세기 나타나며,

기와를 통해서는 4세기 중엽 이후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되므로 이 장군총의 연대는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일 것으로 보고 있다.

무덤 주인공으로는 광개토왕과 그 아들인 장수왕의 것이라는 두 설이 있는데,

중국측에서는 태왕릉을 광개토대왕릉으로, 장군총을 장수왕릉으로 보고 있으나 고분의 유품이

모두 도굴당하였기 때문에 추측에 의존하고 있다. 

1)여행일: 2012년8월27일(월욜)  

2)여행지:중국 고구력역사 탐방 

 

 

 

 

 

 

 

 

 

 

 

 

 

 

┗<광개토왕비>414년(장수왕 3)에 고구려 제19대 광개토왕의 훈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아들인 장수왕이 세운 비석.사면석비(四面石碑)로서 높이 약 6.39m인데,      당시 고구려의 수도였던 국내성(國內城) 동쪽 국강상(國岡上)에 대왕의 능과 함께 세워졌다. 묘호(廟號)인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國岡上廣開土境平       安好太王)의 마지막 세 글자를 본떠서 일명 ‘호태왕비’라고도 한다.능비는 지금의 압록강 중류의 만포진(滿浦鎭)에서 마주보이는 중국 길림성(吉林省) 통화     전구(通化專區) 집안현(輯安縣)의 현청 소재지인 통구성(通溝城)으로부터 동북쪽 약 4.5㎞ 지점인 태왕촌 대비가(太王村大碑街)에 서 있으며, 비의 서남쪽     약 300m 지점에 대왕의 능으로 추정되는 태왕릉(太王陵)이 있다.비의 동북쪽 약 1.5㎞ 지점에 있는 장군총을 대왕의 능으로 비정하는 견해도 있으나    <원태왕릉안여산고여악(願太王陵安如山固如岳)’이라는 명문이 새겨진 태왕전(太王塼)이 발견된 뒤 태왕릉설이 보다 더 유력하여졌다.능비는 동쪽으로 45°     정도 치우친 동남향에서 서북향 방향으로 서 있으며,1928년부터 1976년까지는 집안현 지사였던 유천성(劉天成)의 발기로 세워진 2층 비각 속에 있었으나,      현재는 1982년에 중국당국에 의하여 새로 건립된 단층의 대형 비각 속에 있으며, 비 주위는 보호구역으로 설정되어 철책으로 된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압록강>

 

<압록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