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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여행]눈 덮인 덕수궁

미래(mire) 2013. 2. 11. 14:46

 

대한문]현 덕수궁의 정문이다. 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으나

1906년에 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치고 궁의 정문으로 삼았는데,            

시청 앞 도로의 잦은 확장으로 위치가 수차례 궁궐 안쪽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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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문]현 덕수궁의 정문.원래 이름은 대안문(大安門)이었으나 1906년에 대한문으로 이름을 고치고 궁의 정문,덕수궁의 건물 배치는 궁궐의 중심인 정전과     침전이 있는 구역,선원전이 있던 구역, 서양식 건물이 있는 구역 등 크게 세 구역으로 나뉜다.정전인 중화전은 고종(高宗)이 대한제국(大韓帝國)의 황제가    되면서 1902년(광무 6)에 건립되었다.이 건물은 2단으로 조성된 월대위에 세워진 정면 5칸,측면 4칸 규모의 중층 건물이었다.1904년에 화재가 발생하여 재건    되면서 규모가 줄어 현재와 같은 단층 건물이 되었다.원래 중화전 영역 주위에는 장방형으로 2칸 폭의 행랑이 둘러 있었으나, 일제 강점기에 모두 철거되고,     현재는 동남부 모퉁이의 7칸만 남아 있다. 중화전과 함께 재건된 중화문은 덕수궁의 중문이자 중화전의 정문이다. 당초에는 중층 건물이었으나 중화전이     단층으로 1906년 축소·재건될 때 함께 정면 3칸에 측면 2칸 규모인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지어졌다. ●2013년2월9일(토욜)  『서울 가족여행』                

[덕수궁 함녕전함녕전 - 보물 제820호. 덕수궁 안 동쪽에 자리잡은 함녕전은 고종이 거처한 침전이자 1919년 1월21일 승하한 곳이다. 함녕전 정문이었던     광명문은 현재 덕수궁 안 남서쪽에 옮겨져 있다.덕홍전은 1911년에 건립된 덕수궁 내 현존 전각 중에 가장 나중에 세워진 전각으로, 함녕전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4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성문 밖 지금 미국대사관 서쪽에는 2층 서양식 건물로 접견실 또는 연회장으로 사용하던 중명전(重明殿)    있었고,그 북쪽에 만희당(晩喜堂)·흠문각(欽文閣), 서쪽에 양복당(養福堂)·경효전(景孝殿)등이 있었다. 이 주변 일대의 건물 전체를 일컬어 수옥헌(漱玉軒)    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중명전은 1905년 11월 18일 오전 2시 일제의 강압에 의하여 이른바 '을사조약(乙巳條約)'이 체결된 곳이다.

덕수궁 석어당] 덕수궁에 있는 유일한 중층 건물로 광해군 때 인목대비가 유폐된 곳이기도 하다.석어당은 궁궐안에 있는 건물로서 단청을 하지 않은 건물로   유명하다. 현재의 건물은 1904년에 지은 것이다.함녕전은 현재의 덕수궁 정문인 대한문을 들어서서 오른쪽으로 보이는 행각 안에 남향하여 앉은 건물이다.    함녕전과 덕홍전의 동·서·남 세 면에는 행각과 담장으로 영역을 구획하였고,뒤편 약간 높은 경사지에는 후원을 조성하였다.이 건물은 1904년에 불에 타버리자    같은 해 12월 다시 지어져 오늘에 이른다.고종은 1907년 왕위를 물려주고 13년 동안 함녕전에서 거처하다가 1919년 1월 22일 새벽 이곳에서 승하하였다.   함녕전은 ㄴ자형 평면을 하고 있는데, 몸채는 정면 9칸, 측면 5칸의 규모로, 서쪽 뒤편으로 4칸이 덧붙여 있다. 몸채 평면은 경복궁의 강녕전과 마찬가지로    중앙에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 또 그 옆으로 누마루를 두었으며, 이들의 앞면과 뒷면에는 툇마루와 온돌방을 두었다. 동쪽은 고종의 침실이었고,    서쪽은 내전 침실이었는데, 이러한 평면 형식은 궁궐의 정침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이다.건물 뒤편으로는 굴뚝이 경복궁 아미산처럼    조산(造山)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덕수궁 정관헌정관헌은 벽돌로 쌓은 조적식 벽체에 석조 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가는

목조 기둥을 세워 처리하여 전통 건축과 서구식 건축을 혼합시킨 단층 건물이다. 

         [덕수궁 정관헌 정관헌은 벽돌로 쌓은 조적식 벽체에 석조 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가는 목조 기둥을 세워 처리하여 전통                                      건축과 서구식 건축을 혼합시킨 단층 건물이다.

[덕수궁 덕홍전덕홍전 1911년에 지은 건물로,고종이 내외 귀빈을 접견하던 곳이다.선원전이 있던 지금의 덕수초등학교와 옛 경기여자중고등학교 일대에는    선원전 외에 사성당, 흥덕전(興德殿), 흥복전(興福殿), 의효전(懿孝殿)이 있었다. 중화전 서북쪽에 위치한 석조전은 정면 54m, 너비 31m의 장대한 3층 높이의   석조 건물이다.이 건물과 서관이 들어서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이 조성되면서부터 이웃한 중화전과 주변의 한식 궁궐이 지녔던 고유한 건축 구성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 석조전은 1900년에 착공하여 1910년에 완공되었다.영국인 하딩(G. R. Harding)이 설계한 석조전 1층은 신하들의 거실로, 2층은 왕의 접견실과   홀로, 3층은 황제와 황후의 침실과 응접실로 사용되었다. 1945년 광복 후에는 석조전에서 미소 공동위원회가 열려 한반도 문제가 논의되었으며, 한때    국립박물관으로도 사용되었다. 현재 석조전 본관은 궁중유물전시관, 서관은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덕수궁 석조전석조전은 유럽의 궁전 양식을 모방하여 지은 석조건물이다. 석조전이 세워지고 그 앞에 서양식 연못과 분수가 조성되면서부터 덕수궁의

    모습에 많은 변화가 생겼다.서양식 정자인 정관헌은 1900년경에 건립되었다. 고종이 다과를 들고 음악을 감상하던 곳으로, 한때는 태조·고종·순종의

    영정을 봉안하기도 하였다. 조적(組積)식 벽체에 석조 기둥을 세우고 건물 밖으로 가는 목조 기둥을 둘러 퇴를 두르듯이 처리한 건물이다. 

 

 

 

 

    [덕수궁 중화전]보물 제819호. 덕수궁의 정전인 중화전은 원래 외관이 중층으로 보이는 건물이었으나,

1904년에 불에 타고 말았다.                              

현재의 건물은 1906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덕수궁]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대한문]서울시청 도로변

 

[덕수궁 돌담길]정동국밥

 

[덕수궁 돌담길]

 

 

 

[덕수궁 돌담길과 서울시청 모습]

 

[서울대교구]천주교 서을대교구 정동

 

[서울대교구]천주교 서을대교구 정동

 

[광화문]이순신장군 동상

 

[광화문]세종대왕 동상

[길]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 아무도 먼저가지 않은 길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은 아무도 먼저 걷지 않은 길
저마다 길이 없는 곳에 태어나 동천 햇살 따라 서천 노을 따라
길 하나 만들고 음음음 음음 돌아간다.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은 아무도 대신 가지 못할 길
지금 당신이 걷는 그 길은 아무도 대신 걷지 못할 길
저마다 굽이 굽이 홀로 넘으며 동천 햇살 따라 서천 노을 따라
길 하나 만들고 음음음 음음 돌아 간다.<범능스님>